ueda


                                  

Sai-no-Tsuno


犀の角. 무소의 뿔이라는 의미. 나가노현 우에다시 중앙상점가에 자리한 민간의 극장+카페+게스트하우스. 2016년 오픈.
리서치
︎시즈오카현공연예술센터(SPAC)에서 오랫동안 공연 기획/제작을 해온 프로듀서 부부가 남편의 고향인 우에다에 돌아와 자신들의 손으로 운영할 수 있는 극장을 열었다. 낮에는 카페 겸 커뮤니티 공간 겸 게스트하우스의 리셉션으로, 밤에는 공연장, 파티 장소로 변하는 극장. 극장의 별채 건물은 게스트하우스로 운영된다.

︎동계올림픽이 열렸던 나가노답게(정확히는 나가노시에서 열렸다) 이곳을 찾은 날은 눈보라가 휘몰아쳐 앞을 분간하기도 어려운 날씨였다. 상가의 가운데 위치한 사이노츠노의 문을 열자, 이번엔 따뜻한 온기로 안경에 구름이 껴 또 앞을 분간하기 어려웠다. 에어컨 난방과 화목난로로 덥혀진 ‘극장’에는 차를 마시는 손님들. 동네에 관한 다양한 정보와 행사 안내를 위한 전단으로 가득한 랙, 동네의 모임들이 발행하는 신문과 관련 도서, 동네에 있는 장애인시설 리베르테의 장애인들이 만든 굿즈를 파는 코너 등, 이곳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 동네를 다 알 것만 같은 느낌.

︎끊임없이 내리는 눈을 끊임없이 치우는 스태프들 덕에 짐정리를 마치고 저녁에 카페로 내려가니, 낭독공연이 펼쳐진다. 다른 도시의 극장과 협력하여 고대문학을 공연화 하는 작업을 하고 있고, 그 첫 단계로 원작을 낭독하는 공연을 매월 진행하고 있다고. 낭독공연을 하는 퍼포머 옆으로는 길게 난 통창. 눈보라에 맞서며 걸어가는 시민들도 지금 이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한 듯 들여다본다.

︎다음 날 아침, 극장 무대 위에 놓인 테이블에 앉아 조식. 아침부터 커피를 마시러 오신 손님과 무대에 설치된 그랜드피아노를 치던 어린 학생이 수어로 대화를 나눈다. 극장의 무대감독이 와서 공간에 대한 소개를 해주고, 가고 싶은 곳을 물어 장애인작업장인 ‘리베르테’에 가보고 싶다고 하니 반가워하며 본인이 그곳의 스태프이기도 하다고.

︎동네에 있는 여러 곳을 무대감독님 소개로 돌아보고 저녁에 다시 사이노츠노로 돌아오니 ‘이로이로클럽(여러가지클럽)’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겠냐고 물어온다. 초중고등학생들의 동아리 활동을 학교 안이 아니라 지역 안에서 진행하는 프로젝트. 학교, 학년에 상관없이 동네 학생들이 참여하고, 동네 어른들이 교사 역을 맡는다. 모임 장소는 극장 연습실. 스무명 넘는 동네 학생들이 “오늘 하고 싶은 활동”을 말하고 자유롭게 조를 짜고, 어른들도 하고 싶은 활동에 들어가 보호자 역할을 한다. 어제부터 내린 눈 덕에 가장 인기는 ‘눈싸움조’. 나는 ‘종이접기조’에 들어가 어린친구들의 가르침대로 종이백도 접고 바구니도 접는다. 연습실 전신 거울 앞에서는 ‘Kpop댄스조’가 한국아이돌 노래에 맞춰 맹연습 중이다.  

︎ 오늘의 저녁식사는 사이노츠노를 둘러싼 사람들이 모두 모여 식사. 사장님과 게스트하우스 스태프가 만든 그린커리를 모두 나누어 먹는다. 사장님, 극장 스태프, 동네 영화관 활동가, 우에다시로 이주해온 예술가 그룹, 사이노츠노 건축설계사, 그리고 사이노츠노 게스트하우스에서 지내고 있다는 고3 여자학생과 그 친구. 아침에 피아노를 치던 그 친구다. 집에 있기가 어려워 사이노츠노로 대피해와서 아르바이트와 수험생활을 병행하며 지낸지가 벌써 40일이 넘었다고. 사이노츠노는 물론 영화관에 일손이 필요할 때는 출동하는 별동대 역할도 하는데, 4월이면 대학이 있는 도시로 이사를 가야 한다고. 디저트로 커다란 푸딩을 내어준다.

︎ 다음날 아침에는 사이노츠노에서 일주일 간 머물고 있는 오키나와 거점의 여성연출가이자 소극장 매니저와 함께 눈 덮인 야외에 고개만 빼꼼하게 내밀고 노천온천을 즐겼다. 눈도, 눈으로 덮인 산도 처음이라는 그녀.

︎ 따뜻해진 몸으로 사이노츠노로 돌아오니 ‘발달장애인 부모 모임’이 진행되고 있다. 각자 발달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면서 겪은 일, 어려움, 고민을 나눈다. 알음알음 알던 사이들을 모임으로 확장해 공부도 하고 활동도 할 예정이라고. 함께 온천을 다녀온 친구가 자신의 발달장애를 고백한다. (일본에서는 ADHD, 등교거부, 학습장애 등 ‘발달-성장’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문제가 발달장애에 포함된다.)
코멘트
(내 일기)
“사이노츠노에 있으면 세상의 중심에 있는 것 같다. 모든 정보, 사람이 다가온다. 극장이 지역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모이는 곳, 머물 곳으로서 어떤 것이 가능한지를 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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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kishita


軒下(のきした). 처마 밑이라는 의미. 코로나19가 엄습했던 2020년부터 우에다시의 다양한 공간, 상점 등이 연계해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이다.


리서치
︎ 코로나19로 인해 거리두기, 스테이홈 등의 권고와 보이지 않는 강제성으로 인해 집에 머물러야 하지만, 머무를 집이 없거나 가시적, 비가시적 폭력으로 인해 집에 머무르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마을에 누구나 ‘비와 바람을 피할 수 있는’ 처마 밑을 만드는 프로젝트이다. 이미 마을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간, 상점, 사람들이 힘을 모아 프로젝트를 런칭하여 운영하고 있다.

︎ 노키시타 프로젝트에서 현재 진행 중인 프로그램은, 2개월에 한번, 배가 고픈 사람은 누구나 와서 함께 밥을 먹는, ‘후루마이(おふるまい、한 턱)’, 잠을 잘 곳이 필요한 사람에게 단돈 500엔으로 잠자리를 제공하는 ‘야도카리하우스(やどかりハウス, 빌리는 집)’ 공동으로 텃밭을 가꾸는 ‘무소의 정원’, 돈이 아닌 시간으로 거래하는 ‘새 커뮤니티 히라쿠(ひらく, 오픈)’ 등이다. 그리고, 동네 이웃들의 상담실.

︎ 앞서 사이노츠노에서 다 같이 공짜 그린커리로 저녁을 나눈 것이 ‘후루마이’였고, 40일 넘게 사이노츠노의 게스트하우스에서 머물고 있다는 학생이 ‘야도카리하우스’로 이곳을 찾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가끔 동네 영화관을 봐주고 영화를 공짜로 보고 있다고 말했던 것이 바로 ‘히라쿠’의 일환이었다. 코로나 상황 중 집에서 가정폭력에 시달리던 여성, 가족과의 불화로 갈 곳이 없는 청소년들이 야도카리하우스를 찾았다고. 육아와 가사, 일 등으로 자기만의 시간을 갖지 못하는 여성들이 낮시간에 야도카리하우스를 빌려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기도 한다. 지금도 사이노츠노 온라인숍에는 누군가에게 3일간 집 바깥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하는 ‘도망쳐, 도망쳐 가출 기프티권’(약 10만원)을 판매하고 있다.

︎새로운 쉼터를 만들고 제도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갖고 있는 자원을 활용해 곤란을 겪고 있는 이웃을 서로 돕는 커뮤니티가 사이노츠노를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코멘트
“거기에 가면 어떻게든 살 수 있는, 비와 바람을 피하는 처마 밑”(노키시타 홈페이지 중)






Ueda Film Theater


上田映劇. 우에다시 중앙 상가에 있는 오래된 단관 영화관 겸 극장.

리서치
︎ 1-2층 200석 넘는 객석을 보유한 1917년 개관한 극장. 당초에는 만담, 소규모 연극 등을 공연하는 우에다 시민의 오락의 거점이었다가, 점차 영화나 드라마의 촬영장소로 각광을 받으며 연간 200회 이상의 영상촬영이 진행되는 로케이션 촬영의 성지로 각광을 받았다. 그리고 창립 100주년을 맞이한 2017년 민관협력으로 ‘우에다영화극장 재가동 준비모임’이 꾸려졌고 ‘영화도시 우에다’로서의 상징으로 영화 상영을 시작했다.

︎2017년 이후 공간의 운영주체를 ‘특정비영리활동법인 우에다영화극장’으로 지정하여 나가노현 안에서도 중심도시인 나가노시나 고급 휴양도시인 가루이자와에 비해  문화예술 소외지역에 속하는 우에다시민들을 위한 문화거점으로서 커뮤니티시네마를 지향하며, 단지 영화상영뿐 아니라 문화예술 인력 양성, 교육, 문화마을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상영되는 영화는 주로 독립영화, 예술영화이다.

︎주말에는 ‘어린이 영화의 날’로 애니메이션, 어린이 영화 등을 상영하며, 학교생활에서 어려움을 느껴 등교를 거부하며 학교에 가지 않는 청소년들이라면, 평일 낮에 영화관을 찾아와 무료로 영화를 볼 수도 있다. 비영리단체의 상황 상, 일손이 부족하거나 단체 스태프가 극장을 비워야 하는 상황 등에는 노키시타 프로젝트의 일환인 ‘시간거래’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극장 로비에는 세련되지만 따뜻한 감성의 카페가 자리하고 있으며, 100년의 역사를 담은 우에다영화극장 스탬프 전시, 인근 장애인작업장인 리베르테의 장애인들이 만든 소품, 우에다시에서 영업하고 있는 핸드메이드소품 편집샵의 팝업스토어 등이 운영되고 있다. 2층의 다다미방 구조의 공간은 커뮤니티스페이스로, 방문일에는 ‘리베르테’의 2022년 축제 아카이빙 전시 ‘마을 개방’이 진행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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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berté


우에다시 중심부에 세 군데의 아틀리에를 갖고 있는 성인 장애인복지시설 겸 작업장.
리서치
︎NPO法人リベルテ. 리베르테는 ‘자유’라는 뜻의 프랑스어. 세 곳의 아틀리에 모두 미술을 중심으로 한 예술활동을 펼치는 곳인데, 일본 정부가 지정하는 장애등급, 취업요건에 따라 한 곳은 직장으로서 두 곳은 주간활동센터로 기능한다. 한곳에서는 장애인들이 그린 그림을 가지고 디자인화, 굿즈화하는 업무를 진행하고 장애인들이 월급을 받는 형태이고, 나머지 두 아틀리에는 각각 장애의 정도에 따라 밀도의 차이는 있으나 그리고 쓰는 일상을 보내는 곳이다.

︎한국과는 달리 장애인 시설을 설립하고 대표를 맡는 데 사회복지사 자격이 필요하지 않다. 30대 중후반의 아직 젊은 이곳의 대표는 장애, 예술 둘 다 전공분야도 아니고, 어떤 사명감을 갖고 시작했다기 보다,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보낼 공간을 만드는 일이 필요하겠다, ‘자기표현’을 하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이곳의 운영방향을 정했다고.

︎아틀리에 안에서 각자의 공간, 혹은 책상을 갖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매체와 수법의 자기표현을 하며 일상을 영위하고, 함께 밥을 먹고 회의도 하고 거리로 나가 사람들을 만난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분이 그린-이라기보다 외워 기록한- 우에다로 오는 신칸센 시각표는 벽에 걸려 작품의 아우라를 뽐낸다. 낯선 방문객에게 득의양양하게 이 시각표를 읽는 법을 설명해준다. 그리고 점심메뉴를, 다음주 작업 주제를 조력자와 함께 상의한다. 한 분은 한쪽에 도화지, 한쪽에 종이신문을 놓고 있다. 도화지는 비어있고, 시선은 신문을 향해 있다. 신문에서 얻어지는 어떤 정보가 오후가 되면 도화지로 옮겨지겠지. 한 분의 책상은 색색깔의 실, 매듭으로 가득하다. 이것들은 자수가 되고 문양이 되어 무언가에 활용될 참이다.

︎이분들이 그린 고양이 그림이 그려진 장바구니, 자수가 놓인 냄비받침, 그림이 프린트된 티셔츠 등은 우에다 시내 곳곳에서 ‘리베르테’라는 간판 아래 판매된다. 사이노츠노에서도 우에다영화극장에서도, 동네 축제에서도  이따금 연극연출가, 안무가 등이 리베르테를 찾고 함께 일상을 나누기도 하고 프로그램을 함께 하기도 한다. 2022년에는 한 안무가가 리베르테를 오가며 같이 활동도 하고, 워크숍도 진행했다. 그리고 각자 만든 작품, 소품, 대도구를 입고 쓰고 들고 여름의 우에다를 누비며 퍼레이드를 벌였고, 그 창작과정, 퍼레이드의 사진 등을 담은 ‘마을개방’ 전시가 우에다영화극장에서 열리고 있다. 장애인들이 직접 그린 마을 지도와 돋보기가 관객에게 주어진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게 확대해보면 보이는 것들.

︎도쿄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예술가들이 3.11 동일본대지진 이후 지역으로 거점을 옮기는 움직임이 시작되고, 각 지역마다 예술을 지원하는 지역 아츠카운실이 속속 생기면서 이 국내이주 경향은 더 커졌다. 나가노 지역에도 신슈아츠카운실이 생겼고, 소개했던 우에다의 모든 거점들의 운영에 힘을 실어준다.(우리나라의 경우 아츠카운실이라는 표기법을 쓰는 기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나, 일본의 경우 중앙에는 아츠카운실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인프라가 만들어지자 사이노츠노의 대표 부부를 비롯해 간토지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던 몇몇 기획자들이 이주하여 새로운 판을 벌였고, 자연스레 다양한 예술가들이 그 기획들에 이끌려 이곳에 길든 짧든 머물며 인연을 만드는 일이 늘어났다. 이곳으로 이주한 기획자들 역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수준 높은 최첨단 컨템포러리’를 지향하던 도쿄에서의 활동 목표에서 함께 사는 사람과 발 딛고 있는 땅에 관심을 가지는 기획으로, 작업과 삶의 방향이 넓고 깊어졌음을 직접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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