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kyo


                                             

prof. Ito Asa


伊藤亜紗. 생물학자를 꿈꾸다가 미학으로 전향. 현재 도쿄공업대학에서 리버럴아트 연구교육원 부교수이자 '미래의 인류 연구센터'를 이끌고 있다. 장애인들의 몸과 감각을 연구하며 <기억하는 몸>,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어떻게 보는가> 등의 저서가 국내에 번역, 출간되어 있다.
리서치
︎곤충, 동물, 식물 나와 다른 몸을 가진 존재들은 세상을 전혀 다르게 볼 것이라고 생각해 생물학에 관심이 있었으나, 생물학에서는 유전자 정보화쪽에 더 방점이 찍혀 있었다. 나는 살아있는 존재에 대한 관심을 갖고 문과로 전과했고, 언어화하기 어려운 것을 언어화하는 학문이 미학이라고 생각해 선택했다. 그 중에서도 ‘다른 몸’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백인-남성-중산층 중심의 보편적인 철학/인문학에서 다뤄지지 않는 존재인 장애인을 연구하기 시작했다.

︎장애인의 다른 감각과 함께 하는 예술 워크숍, 프로젝트에 참여하거나 참관하기도 한다. 미술작품을 시각장애인들이 감상하게 하는 소셜뷰잉 워크숍이 꽤 오래 전부터 진행되어 왔다. 비장애인들은 보통 전시회에서 “멋있다”고 느끼며 감상하지만, 그걸로는 시각장애인에게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한다. 비장애인이 장애인을 만나는 과정에서 실패를 반복하며 새로운 의사소통의 연습을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역시 시각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무용워크숍에서 시각장애인들은 무용을 감상하기 위해 바닥에 누워 진동을 느끼기 시작했다.  새로운 번역의 발견이었다. 어떤 예술적인 시도에서도 공통적인 것은 대상을 탐색하며 공통의 언어를 만드는 과정이다.

“무심코, 우연히(うっかり)”를 자극하는 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한다. 미술 작품 소셜뷰잉을 할 때 시각장애인이 이상한 소리를 해도 논리를 따지기보다 인정하는 것. 무심코 한 말, 우연히 튀어나온 반응을 통해 ‘이럴 것이다’를 넘어서는 경험을 하게 하는 것.

︎인간의 신체는 무엇인가가 나의 큰 관심사다. 인간의 신체가 가진 가능성을 다른 몸들이 서로 탐색하는 것이 나의 연구이며, 그런 의미에서 인간 전원이 공동연구자다. 어차피 죽을 몸과 어떻게 잘 같이 살 것인가. 끝이 나지 않는 연구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내 몸과의 관계를 적절히 맺지 못해 나타나는 어려움인 섭식장애에 대해 연구하고 있다.

코멘트

작업기획을 위해 장애인을 비롯한 사회적 소수자를 만나기도 하고, 다른 활동을 통해 연을 맺었다가 작업기획으로 연결하기도 한다. 때때로 기획자로서의 나는 다른 관심사로 나아가거나 다른 대상을 만나게 되는데, 그렇다고 이전 작업의 협업자들과의 관계를 끊고 싶은 것은 아니고 모두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것도 개인으로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당사자들을 작업의 소재나 대상으로서 일시적인 ‘활용하는’ 방식을 내가 맺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늘 두려운 부분이다.

“나의 경우 연구의 대상이 되어줄 장애인들은 조건을 정해 모집하지만, 연이 닿는 사람을 발견하는 편이다. 당사자들의 모임에 가거나 지인의 소개를 받거나. 장애인협회 등의 단체 등과는 연계하지 않는다. 장애와 예술이라는 테마가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학생들도 많이 기획한다. 그 대상이 되는 장애인 중에는 이용이나 착취를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다. 나도 연구가 끝나고도 어느 단계까지는 정기적으로 연락하고 지냈지만, 그 수가 점점 늘어나 무리라고 판단했다. 가끔 참여가능한 사람들이 모이는 모임을 기획하기도 하고, 안내견을 잃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줌 술자리를 마련한 적도 있었다. 어느 시점부터는 보통의 인간관계와 마찬가지로 생각했다. (장애인이라는 특성과 상관없이) 마음 맞는 사람과는 계속 만나면서 연구와 사생활이 병행하기 시작한 셈이다. 느슨한 연결. 서로에게 어떤 일이 있을 때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과 연결을 가져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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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쿄공업대학 미래의 인류 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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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신로봇 오리히메* 카페 DAWN

* 오리히메:  외출을 할 수 없는 장애인 등이 ‘파일럿’으로서 원격 조종하여 접객서비스나 본인이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일을 수행하게 하는 로봇. 자레 오사무 안무가와 이토 아사 교수가 오리히메, 파일럿과 함께 <분신로봇과 댄스> 연구를 공동으로 진행했다.






Social circus


예술을 통해 소수자의 관점을 반영한 사회혁신을 꿈꾸는 비영리단체 슬로우 레이블(Slow Label)의 프로젝트로, 25년 이상 소셜서커스를 진행해온 프랑스의 태양의 서커스와 2017년부터 협력하여 개발한 모두를 위한 서커스 교육·체험 프로그램을 다양한 대상과 함께 진행한다.

리서치
︎ “이 세계에 존재하는 다양한 형태의 벽을 뛰어넘는 서커스”를 지향하는 소셜서커스는 일본 내 여러 지역의 장애인시설, 일반기업 연수 등에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도쿄의 ‘강남구’에 해당하는 미나토구 장애보건복지센터 휴먼플라자에서 열린 워크숍에 ‘시설 비이용자’ ‘지역구 미거주자’ 자격으로 참여.

시청각 중복장애를 가진 청년, 휠체어에 앉은 중도 뇌병변 장애의 어린이와 조력자(어머니), 발달장애인 청년, 수어통역사 등, 복지관 이용자나 다른 곳에서 장애인과 활동하는 비장애인들이 참여. 연령대도 장애의 유무와 유형도 다양한 참가자들이 인솔자가 데려오는 것이 아니라 복지관 내 이곳저곳에서 비연속적으로 진행되는 다양한 프로그램에 자율적으로 신청해 참가하는 것이 인상적.

︎ 널찍한 체육관 안에 소박한 서커스 장식, 중앙 테이블에는 자유롭게 손에 쥐고 놀아볼 수 있는 공, 접시, 저글링, 켄타마 등 여러 가지 서커스 도구들이 놓여 있다. 앞의 한 시간 동안은 각자 돌아가며 자신있는 것, 하기 어려운 것을 포함한 자기소개를 진행하고, 개인별로 도구를 가지고 기본적인 서커스 동작을 해보는 시간으로 진행. 서커스 전문가인 강사진들이 장애를 가진 분들이 할 수 있는 방식과 범위를 제안하고 일대일로 코치를 해주며 각자의 방식으로 즐길 수 있게 조력한다.

휴게를 지나 후반부에는 몇 개의 팀으로 나뉘어 켄타마 이어달리기, 풍선 이어 던지기, 전원이 참여하는 솔레이유(가운데 켄타마의 통이 있고 각 통에 연결된 끈을 각자 쥔 후, 통 위에 공을 올릴 수 있도록 위치, 거리, 힘 등을 조절하다가 마지막에 큐를 맞춰 통 위에 볼을 올리는 ‘솔레이유’를 했다.

︎ 엄청난 서커스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커스라는 매개를 통해 서로의 몸과 감각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 그런 과정에서 어떻게든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는 것에 의미가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 말이나 서사가 아닌 놀이로서의 예술. 처음 도전해보는 서커스 기술에서 의외의 재능을 발견한 것도 수확이다.)

︎ 슬로우 레이블을 이끄는 크리스 요시에(栗栖良依, Kris Yoshie) 씨는 20대 이후 질환으로 인한 지체 장애를 갖게 되어 지팡이를 사용하는 중도장애인 여성이다. 워낙 무대미술을 전공하고 연출활동에 관심을 갖고 있었으나 중도장애 수용기를 거쳐 슬로우 레이블을 설립하며 다시 한 번 꿈에 도전. 첫 번째 목표였던 도쿄패럴림픽(2020) 개폐막식의 총연출을 맡았다. 앞으로도 장애인 예술가를 육성해 대규모의 공연을 연출해나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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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s Knot


도쿄 성소수자의 성지, 신주쿠 2초메(新宿2丁目, Shinjuku Ni-chome)에서 1982년부터 영업하고 있는 아주 작은 게이바. 미술작가인 오츠카 타쿠 상이 오너이다.

리서치
︎ 그림들. 예술가가 운영하는 바답게 타쿠 상이 그린 그림들이 이곳저곳에 걸려있고, 꽃들이 가득하다. 속옷만 입은 게이 커플이 얼굴에는 한국의 전통탈을 쓰고 있다. 인물 주변에는 작가가 가장 사랑하는 문장인에리히 프롬의 저작『사랑의 기술』의 몇 문장이 한국어, 일본어의 가타카나, 영어로 적혀있다. 그 맞은편에는 정면으로 선 여성 스모(女相撲, 온나즈모) 선수 둘. 피부색이 조금은 다르지만 맞잡은 손에서 커플임을 알 수 있다. 지금은 스모는 철저한 남성의 스포츠이자 세계가 되었지만, 고대에는 엄연히 존재했었고, 그 이후 맹인 남성의 상대로서만 여성 스모선수를 기용하다가, 스포츠가 아닌 볼거리로 전락했고, 이후 완전한 ‘금녀’ 종목이 된 역사를 갖고 있다. 그 외에도 게이커플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상업영화 <에고이스트>의 포스터, 성소수자와 관련된 연극 전단 등이 빼곡하게 붙어 있다.

︎바 안쪽 책 선반에서『무지개빛 라이프플래닝 입문』,『둘이서 안심하며 마지막까지 살기 위한 책 - 동성 파트너와의 라이프플랜과 법적 서류: 돈, 의료, 노후...』,『둘이서 사는 기술』등 타쿠 상은 오너이긴 하지만 바의 운영은 요일별로 여러 성소수자들에게 맡기고 있다고.

︎ 쉰 나이를 훌쩍 넘긴 타쿠 상에게는 40대의 파트너가 있는데, 도청의 공무원. 시부야구가 최초였던 동성 파트너십을 인정 조례를 도쿄도지사가 통과시켜 도쿄도에 살면 어느 구에 살든 동성 파트너십 등록이 가능하다. 타쿠 상은 법적인 보장을 위해 조례 시행 이전에 이미 파트너를 양자로 입적시킨 상태. 파트너십 조례가 시행되었을 때, 시행공고에 “현실적인 이유로 양자관계를 맺고 있는 동성 파트너도 파트너십으로 전환이 가능하다”는 조항이 달려 있어 이에 따라 파트너십으로 전환했다고. 이 조항을 보고 “동성커플들의 상황을 아는 사람이 만든 조례”라는 실감을 했다고. 동성 파트너십 관계는 법적으로는 큰 보장은 없지만, 동성커플의 존재를 법이 앞장서 ‘인정’했다는 점, 이를 둘러싼 민간의 보험, 부동산 거래 등에 반영이 되고 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서울시청에 파트너가 동성임을 밝히고 일하는 공무원이 있는 광경을 상상해본다.

︎ 타쿠 상의 파트너는 전직 연극인. 레즈비언 커플의 이야기를 담은 희곡 <나쁜 여자> <여자 스모> 등을 집필한 바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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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c’s Knot





Ministry of Health, Labours, and Welfare

리서치
일본 정부 부처인 후생노동성(厚生労働省, 우리나라의 고용노동부, 보건복지부의 기능이 합쳐진 곳)의 장애인문화예술계획 추진관 모리 마리코(森真理子)와 인터뷰.

︎후생노동성 안에서는 이미 장애인의 예술 창작 및 향유 권리에 대한 모델 사업을 2014년부터 진행하고 있었는데, 장애인의 문화예술에 대한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2017년 <문화예술기본법> 개정 내용 중 ‘장애인도 창작과 향유의 권리가 있다’는 내용이 포함되면서부터이다. 이후 2019년부터 시행된 <장애인에 의한 문화예술활동 추진에 관한 법률>(약칭 장애인문화예술추진법)이 만들어지면서 사업의 범위와 예산의 규모가 크게 확장되었다. 법률의 개정 및 제정의 배경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으나 이른 시기부터 장애인들의 미술 활동의 가치를 발견하고 이를 산업화, 제도화하려는 움직임이었던 아르브뤼의 정치력에 크게 기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브뤼 외에도 장애예술을 둘러싼 서로 다른 관점, 접근법, 속된 말로 파벌이 존재했었는데, 결국 이것이 법제화로 이어진 데 대한 공로는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주도자는 몇 년 전, 성추문으로 인해 은퇴한 상태라고....)

︎사업이 확장되면서 후생노동성 내에 장애와 예술을 모두 아는 전문인력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었고, 나와 같은 예술현장의 인력을 포스트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내가 두 번째 담당자인데, 교토에서 커뮤니티 아트, 연극제작, 지역 예술행사 디렉터를 거쳐 장애인단체를 지원하는 닛폰재단에서 예술사업을 담당했던 경력이 인정되어 중앙부처로 자리를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내 전임자 역시 공공극장에서 공연을 만들던 분이었다.      

︎ 장애인문화예술사업이 문부과학성이나 문화청 같은 정부의 문화예술 관련 조직이 아니라 후생노동성의 주도로 진행되고 있는 것은, 처음의 요구와 수요가 장애인복지시설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장애와 예술이 결합했을 때의 힘에 처음 주목한 곳이 장애 영역이었다. 현재는 문화청에서도 같은 법률을 근거로 ‘장애인 등에 의한 문화예술활동추진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주로 예술단체와 예술활동에 방점을 두는 사회복지법인 등이 지원신청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리고, 애초에 이 법률을 만들려는 움직임이 있을 때부터 후생노동성과 문화청의 장애예술 담당자가 지속적으로 연락/협력 테이블을 마련해 논의를 거듭하고 있다. 현황 공유부터 각 부처에서의 사업구조 차별화 등을 논의한다.

︎ 현재 실행 중인 장애인문화예술추진계획 안에서 가장 큰 사업은 전국 각지에 ‘장애인문화예술지원센터’를 설립하는 것. 47개 도도부현 중 39개 도도부현에 센터를 설치하는 것이 현재 후생노동성의 목표이다. 각 광역 센터에게 연간 1억원 정도의 예산을 중앙에서 지원하고, 거기에 광역 지자체가 매칭 펀드를 하는 방식으로 각 센터들은 예산을 확보하고 있다. 지원센터로 지정받는 곳들은 이미 지역에서 장애와 예술을 키워드로 활동하고 있는 비영리 장애관련 복지시설인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들 전국의 센터를 아우르는 전국연계네트워크 역시 기존의 문화예술기획 등을 하는 곳이 공모를 통해 대행 운영을 맡고 있다. 현재는 오카다 토시키(Okada Toshiki)를 필두로 일본의 컨템포러리 연극을 해외에 앞장서 소개해온 프리코그가 전국연계네트워크 사업을 맡고 있다. 이들은 장애에 대한 특징이 있는 곳은 아니었지만, 예술사업에 대한 전문성, 장애예술의 창구를 넓히고자 하는 바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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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ira the Hustler


시각예술작가, 활동가. <남창일기>(햇빛서점)가 한국어로 번역, 발간되어 있다.

리서치
︎ 나와는 <변칙판타지_일본 버전>(기획_고주영, 연출_정은영) 속 영상 출연자로 만나 내가 프로그램디렉터였던 요코하마공연예술회의2020에서 <어기야디어라>(기획_고주영, 연출/출연_모어x아키라)로 한-일 드랙아티스트 협업을 함께 한 바 있다.

개인과외를 받으며 한국어를 공부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많은 작가라 성소수자를 둘러싼 한국과 일본의 상황을 현재 버전으로 업데이트하여 공유하기 위한 만났다.  

︎ 한국의 성소수자들이 부러워하는 ‘동성 파트너십 조례’에 대한 견해. 구청에 가서 신고를 하면 등록증을 받을 수 있는데, 실질적인 법적 효력이나 혜택은 많지 않다고 생각되지만, 동성 커플을 법과 행정에서 인정한다는 상징적인 의미로 일본의 성소수자 당사자들은 해석한다.

︎오히려 동성 커플을 위한 사적 보험, 상품 등이 개발되어 ‘소비자’로서의 위치는 한층 인정받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는 도쿄레인보우퍼레이드로도 이어져서, 새로운 집행부가 꾸려진 후, 거대기업 등의 협찬과 지원이 크게 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시부야구 일대가 레인보우로 물드는 장관을 선보이지만, 이것이 성소수자의 실질적인 가시화나 권리 확보에 도움이 되는지는 의문을 갖는 당사자들도 많다고.

︎ 아무튼, 그래도 비교하자면 성소수자에게 관대하게 보이는 일본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내고 활동하는 성소수자 당사자 예술가가 적은 것은 이것이 ‘프라이버시’ 영역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고, 자신의 사적인 이야기를 ‘굳이’ 드러내지 않는 많은 일본인의 경향과도 맞닿는 부분으로 생각한다고.

︎연예인 얘기로 옮아가, 아키라 왈, 방송이나 언론에도 크로스드레서, 트랜스젠더로 정체화한 사람들이 많이 등장하지만, 그들의 예능적 특성으로 수용될 뿐 더 깊은 논의로는 이어지지 않는다. 더 깊은 얘기를 하면 지금의 인기를 잃게 되리라는 두려움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히카와 키요시(氷川きよし)의 예는 특수하다. 남성 엔카 가수에서 지금은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한 듯한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나답게 살기로 결심했다”는 글로 이 변화가 시작되었는데, 그 이후에도 그의 팬덤은 전혀 흔들림이 없다.   

︎ 일본에서 이런 가수가 등장하고 파트너십 조례가 만들어지는 이유를 아키라는 “일본에는 한국의 기독교 같은 주류 종교가 없기 때문에”라고 설명한다. 한국은 유교에 보수개신교가 합쳐졌으니... 납득.

︎ 아키라는 작년부터 장애인 활동지원사 일을 시작했다.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고 일상을 서포트 하는 일의 즐거움을 깨닫고 있는 중이라고. 그리고, “게이들은 다른 사람의 타액에 익숙한 사람이라 장애인의 신변처리 등에 별로 어려움을 안 느끼니 잘 맞는 일”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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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일기)
2000년대 초반 일본에서 유학하던 시절, 텔레비전을 틀면 음악방송, 예능 가리지 않고 포멀하지만 화려한
정장차림으로 등장하며 ‘엔카의 왕자님’이라는 타이틀로 특히 중장년 여성을 중심으로 아이돌급 인기를 누리던 10대 미소년 엔카가수인 히카와 키요시는 이름을 듣자마자 그 모습을 떠올릴 정도로 나에게도 익숙한 존재였다. 그의 변화에 대해 찾아보니, 2019년부터 여성적 의상-남성적 의상을 때때로 입고 노래하기 시작했고, 2020년부터는 완전히 ‘젠더리스’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매 연말 NHK에서 방송되는 <홍백가합전>(그해에 가장 활약한 여성가수와 남성가수를 레드, 화이트팀으로 나누어 겨루는 음악 이벤트)에서 어느 팀에도 속하지 않은 위치에서 노래했다고. 임영웅이 “나답게 살고 싶다”며 지금까지와는 다른 자기 젠더를 드러내는 퍼포먼스를 보이면 우리나라에는 어떤 소동이 일어나려나...





Pride House Tokyo Legacy


도쿄 및 도쿄를 방문하는 일본 국내 성소수자, 해외 성소수자가 마음 편히 들러 차를 마시고 정보를 나누는 사랑방.

리서치
︎2010년 함부르크동계올림픽 때 다양한 정체성과 지향의 성소수자 선수들에게 안전한 공간과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여러 단체가 합심하여 설치된 것을 시작으로, 이후 대규모 국제스포츠대회 개최지에 설치되곤 하는 것이 프라이드하우스. 프라이드하우스 도쿄는 2020년 도쿄올림픽-패럴림픽을 앞두고 2018년 여러 시민단체, 대사관, 기업 등이 함께 기간 한정으로 운영할 예정이었으나, 코로나19로 인한 대회 연기 및 집합 금지 명령에 따라 공간을 상설화하기로 결정, 2020년 10월 11일, 국제커밍아웃데이에 신주쿠2초메에 오픈했다.

︎ 프라이드하우스는 매일 문을 열고 방문자들을 맞는다. 내가 이곳을 찾은 날은 일본농인LGBTQ연맹 설립을 준비하던 멤버이기도 한(올 4월 6일 공식설립) 농인 성소수자 당사자 스태프가 맞이해주었다. 내가 일본수어를 몰라, 패드에 글을 쓰며 무료로 차를 내주고 공간을 소개해준다. 차와 함께 내준 일본의 오리온, 메이지가 생산한 프라이드 버전 큐브 초콜릿에는 ‘Big Love, 서로 다른 한명 한명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이라고 쓰여 있다.   

︎ 공간의 두 면을 차지하는 서가에는 소설-비소설, 그림책, 영어책 등을 막론하고 성소수자를 다룬 다양한 책들이 꽂혀있고(성소수자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더라도 당사자가 읽고 그렇다고 판단한 책들도 포함되어 있다), 세분화된 성별 정체성, 성적 지향에 따른 모임과 단체들의 사업을 알리는 인쇄물, 성소수자에게 필요한 주거-의료 등의 서비스에 대한 정보가 담긴 인쇄물들이 빼곡이 꽂혀 있다.

︎ 한쪽의 쉐어오피스에서 일하던 도쿄레인보우프라이드(TRP)의 전임 대표이자 프리랜서 출판편집자인 야마가타 상을 정말 오랜만에 만나 근황토크. 다양한사업의 예산을 끌어모아 공간을 운영하고 있으며, 스태프들도 아르바이트이긴 하지만 유급고용이라고. 영화광이기도 한 야마가타 상으로부터 일본퀴어영화도 몇 편 추천받고, 다가오는 퍼레이드 얘기도 살짝. 대화하는 동안 카페공간에는 해외에서 온 사람들, 일본인 청인과 농인이 있고, 이들에게 공간을 설명하는 영어, 일본어, 일본수어 등 다양한 언어와 웃음소리가 오간다.

︎홋카이도 출장에서 임보라 목사님의 부고를 듣고 남은 일정을 소화하고 도쿄로 돌아와 눈을 뜬 아침, 어찌해야 할 바를 모르겠고, 어디로 가야할지를 모르겠던 나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이곳을 찾았다. 부고를 전해들은 스태프의 포옹과 야마가타 상의 한숨이 함께 해줘서 다행이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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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usuem of Contemporary Art, Tokyo(MOT)


도쿄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네덜란드 작가 Wendelien Van Oldenborgh의 개인전 <unset on-set : 부드러운 무대(柔らかな舞台)>.

리서치
︎ 네덜란드 출신의 50대 여성 영상작가의 아시아 첫 개인전. 별 정보 없이 찾았지만, 미술관 2층 전체를 사용해 네덜란드가 식민 지배를 했던 인도네시아와의 관계와 그 안의 사람들, 네덜란드를 찾아온 난민, 젠더(페미니즘, 퀴어), 특히 예술제작 현장에서의 젠더, 도시개발로 인해 거처를 잃은 빈민 등 지금, 서 있는 곳에서 들려오고 들려야 할 목소리를 다 담겠다는 의지가 한 작품 한 작품에 담겨 있어 모든 작품을 보기 위해 이틀 간 관람했다. 앞으로의 리서치를 위한 좋은 오리엔테이션을 받은 느낌.

︎일본의 1세대 레즈비언이라고 해도 좋을 일본의 문학자들을 소재로 가져와 일본 안과 바깥의 관점을 경유하여 레즈비어니즘을 탐구한 신작 <of Girls>에 매혹되고 말았다. 신작들로부터는 일본 사회를 일반적으로 보여지는 방식대로는 보지 않겠다는 고집까지 보인다. 작품들이 대부분 짧지 않고 말도 많은 편인데, 작가의 의도대로 필요한 부분만을 편집하는 기술보다는 언제까지고 상대와 오가는 대화를 관찰하고 응시할 수 있는 카메라라는 눈에 더 방점을 찍은 것처럼 느껴졌다.

︎전시 관련 부대행사에는 일본에서 페미니즘, 퀴어 관련 진(zine)을 만드는 사람들, 아키라 더 허슬러를 포함한 퀴어예술가들이 초청되었고, 아트샵에도 페미니즘 독립출판사 엣센트라의 책과 굿즈들, 잡지 <IWAKAN(위화감이라는 뜻의 일본어에서 따온 제목)> 등이 가득하다.




코멘트



Sokerissa!


ソケリッサ!안무가 아오키가 2005년 시작한 단체로 전현직 노숙자가 무용수로 참여한다.  소케릿사는 “그리로 가!”(それ、行け! Step Forward)라는 의미. 일본어 공식단체명은 소케릿사 앞에 新人H(신참H)라는 단어가 추가되는데, H는 Homeless, Human, Hope 등의 다중적 의미를 갖는다.

리서치
* 인터뷰이-안무가 아오키(Aoki), 드라마터그 구레미야 유리카(Kuremiya Yurika)

︎ 뉴욕에서 ‘백업댄서’로서의 공부를 하고 있을 때, 9.11과 조우했고, 세상을 보는 예술인으로서의 시야가 좁고 얕다는 사실, 예술인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공부하던 소위 상업적인 무용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특화된 표현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일본으로 돌아와 신주쿠에서 버스킹 공연 옆에서 엉덩이를 드러내고 자던 홈리스 할아버지를 봤다. 저렇게 현실의 삶과 직면하고 있는 몸에는 나에게는 없는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2005년에 중앙선 전철을 타고 가면서 각 역마다 내려 홈리스 한사람 한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공통적인 관심사가 없으니 대화가 어려웠다. 그냥 인사하고, 또 올게요, 다시 가서 “오늘은 먹을 것 갖고 왔어요”, 그 다음엔 “같이 춤 출 사람 찾고 있어요”, 돌아오는 대답은 “안 해요” “그런 거 할 사람 없어요”. 당연하게도 아무도 선뜻 수락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잡지 <빅이슈>를 알게 됐고, 빅이슈 재팬의 대표에게 상의하니 판매처인 홈리스들의 연락처를 알려줬고, 본인들 회의에 와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해줬다. 그래도 안 돼서 마지막에는 춤 공연을 하겠다고 해서 몇 명이 모였다. 거기에서 내가 먼저 춤을 추고 “같이 몸을 자유롭게 움직여 봅시다” 했다.

︎ 2006년에 처음으로 5-6명이 모여 연습을 시작했을 때는 전문댄서를 일대일로 매칭해서, 안무를 가르쳐주고 반복하게 했지만, 태만해지고 지루해하고, 금세 까먹었다. 홈리스 생활 때문에 경직된 몸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럽기도 했고. 그래서 방법을 바꿔, 멤버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의 움직임을 구성해 작품을 만들었다. 2007년에 신주쿠에 있는 소극장에서 첫 공연을 했는데, 대부분 복지 관계자들이 보러 왔다. 홈리스 동료가 보러 왔더니 냄새가 난다고 나간 관객도 있었다. 그러다가 꾸준히 활동하니 미술관에서도 불러주고 축제에 초청되어 공연한 적도 있다. 도쿄올림픽 전에 세계에서 홈리스 예술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국제회의가 영국에서 있었는(Arts&Homelessness International), 거기에도 다녀왔다.

멤버들은 춤추고 박수 받으면 당연히 기뻐한다. 노숙하면서 무시당하던 존재에서 박수 받는 존재가 된다는 사실에 기쁨이 큰 것 같다. 그래서 워크숍보다는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는 것에 활동의 중점을 두고 있다.

︎ 지금은 공연의 기회가 늘어나서 멤버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초창기에는 공연날 같이 연습한 멤버 중에 몇 명이 올까, 항상 걱정했다. 몸이 안 좋아질 수도 있고 여러 환경적 변수가 있으니까. 처음에는 모두 현직 홈리스였지만, 지금 멤버들은 모두 전직 홈리스들이다. 무용활동 하면서 집을 구한 경우도 있고, 코로나 당시 빅이슈를 통한 주거지원을 받아 정착한 분도 있다. 공연을 하면 사례비를 지급하는데, 대부분이 생활보호대상자라 일정 금액 이상을 지급하면 오히려 생계에 문제가 생겨 최저선 정도로 지급하고 있다.

︎ 초창기엔 제대로 된 환경에서 춤추게 하고 싶어서 오히려 극장을 찾았는데, 요즘은 이 멤버들의 터전이기도 한 거리 공연을 일부러 기획하는 편이다. 역앞이나 공원 같은 원래 홈리스들의 거점인 곳. 웃긴 건, (다양성을 표방하는) 시부야구 같은 경우 야외 공공공간에서의 공연 허가가 안 나온다. 오히려 상업시설이 소유한 야외공간을 빌려 공연을 했다. 올림픽 이후 유행처럼 번지는 ‘다양성’ ‘포섭’이라는 말 안에 홈리스는 배제되어 있다. 도쿄 패럴림픽 개막식 퍼포머 모집 요건에도 홈리스는 해당되지 않았다.

“어디에 가면 다양한 다른 관객들을 만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면 사회적 의미를 갖게 되고, 액티비즘적 의미를 갖게 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사고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보는 사람이 보고 직접 고민하길 바란다.  

︎ 워낙 다양한 몸에 관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노인, 어린이, 장애인들과도 무용워크숍을 하는데, 소케릿사 멤버들이 함께 하기도 한다. 고향에 가서 공연해보고 싶다는 멤버도 있고 해외에 가서 해보고 싶다는 멤버도 있다. 목표나 이상을 설정하지는 않으려고 한다. 아저씨들이 하고 싶은 방향으로 가고 싶다.
코멘트

나는 당연한 듯 누려온 법과 제도의 보호와 권리를 누릴 만한 기회조차 갖지 못한 소수자들과 함께 작업을 할 때, 그들이 결핍 당해온 것들에 대해 부채감 같은 것들을 느낀다. 그로 인해 작업적 관계가 인생의 관계로 연결되는 일도 있는 것 같다. 멤버들과 어떤 관계성인가?

“나의 경우 일부러 작업과 관련없는 인생 이야기 안 하려고 한다. 생활적인 면에서 뭔가를 해주려는 마음이 생기면 더 상처를 받게 될 수도 있다. 작업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부분도 있지만, 일부러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이 활동의 출발이 복지적 관점보다는 내가 갖지 못한 것을 가진 몸에 대한 관심, 도시에 존재하는 나와 다른 몸에 대한 관심이었다. 그런 관계성을 멤버들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연습 광경을 보면 정말 드라이한 관계다. 감정적으로는 손을 잡고 싶고 계속 같이 활동해줬으면 해서 중간에 안 나타나는 멤버를 찾아간 적도 있긴 하지만, 과잉되기 쉽다. 경험상 가장 심플한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뒤풀이도 잘 안한다. 지병이 있는 멤버도 있고 돈이 없는 사람도 있다. 복지적 지원은 빅이슈나 지원단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사실 드라이하게 관계를 유지하는 게 공감하고 지원하는 것보다 어렵다.




Wada Hanako


和田華子. 성확정 수술을 준비하고 있는 FTM 연극배우이자 현재 예술인들을 대상으로 한 섹슈얼리티-젠더와 관련된 워크숍이나 스터디를 이끌고 있기도 하다.

리서치
︎ 퀴어가 등장하는 연극은 늘었다. 고전희곡에 성소수자 역할을 넣거나 커밍아웃 못하는 등장인물이 있다. 동성혼을 둘러싼 법정물인 해외희곡을 동성혼에 대한 논의의 진전조차 없는 일본의 상황에 맞게 번안한 낭독공연도 있었고, 사회적 주제를 다루는 작가 중에 레즈비언과 게이 등장인물을 포함시킨 희곡도 있었다. 퀴어 당사자가 만드는 연극도 늘었고 만들려는 사람들도 늘었지만,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다보니 애매하게 묘사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레즈비언 영화를 무대화한 연극이 있었는데, ‘레즈비언’이라는 단어대신 LGBTQ 연극이라고 표방한다든지, 신국립극장에 올라간 <엔젤스인아메리카>는 심지어 LGBTQ라는 표현을 쓰지 않도록 하는 보도지침을 돌리기도 했다. 한 극단은 성소수자 이슈를 지속적으로 다루지만 자기의 섹슈얼리티는 밝히고 싶지 않다고도 했다. 그 외 작품에도 게이나 트랜스여성의 서사는 많지만, 그 외의 성소수자는 많이 다뤄지지 않는다. 현실과 괴리감이 있다.

︎ 자기 이야기나 경험에서 시작하는 작품이 늘어나다보니 성적 지향에 대한 작업을 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력을 느낀다. 하지만, “이래서 힘들어요”라는 작품을 만들고 싶지는 않다. 작가가 나를 염두에 두고 쓰거나 연출이 그렇게 창작하려고 하는 생각이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지향하는 바는 달랐다. 당사자 역할로 섭외가 올 때는 오히려 사향하는 편이다. 아직 성별 확정 수술 전이기 때문에 그 외관에 맞는 역할을 맡으려고 생각하고 있다. 이성애자들은 동성애자 역할을 하면서 나는 성소수자 역할만 해야 하는 건 이상하다.

코로나 기간 중 한 연극제에서 젠더에 대한 스터디모임과 체험 워크숍을 제안 받았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성을 체험한다는 게 무슨 의미지’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획을 바꿔 내가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했을 때 받았던 36가지의 반응을 36명의 배우가 재현하는 영상물 <‘나는 트랜스입니다’=???>를 만들어 설치했다.  

︎ 2018년에 필리핀 여성 연출가와 다큐멘터리 연극 작업을 한 적이 있었다. 젠더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어서, he/she 중 어떻게 불리길 원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그리고 나의 뜻에 따라 나의 대사는 모두 (남성이 자신을 지칭하는 일본어인) ‘보쿠(僕)’, (그녀가 아닌) ‘그(彼)’로 적었더라. 그 경험을 하면서, 이런 현장이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동료들과 함께 안전한 창작환경과 젠더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다.  

︎ 성별 확정 수술을 위해 필요한 돈을 준비하고 있고, 올해 초에 가족들에게도 커밍아웃을 하고 수술 계획을 얘기했다. 학생 때는 치마교복을 입지 못하는 상태였음에도 엄한 아버지에게 말하면 학비, 생활비의 문제가 있을 것 같고, 다른 가족들에게 피해가 갈 것 같아 말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때 수술을 했더라면 배우 일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서른이 넘을 때까지 배우로서 기반을 만들고 실적을 쌓고 그리고 준비를 시작했다.

︎ 일본 연극계에는 작품이 액티비즘적 성격을 띠는 것에 대한 경계가 지나치게 많다고 생각한다. 연극밖에 안하면서 세상을 바꾸고 싶다고 말한다. 연극이 놓인 사회적 맥락과 배경을 생각하지 않는다. 평화로운 상태가 아닌데 지금 일본사회가 평화로운 것처럼 보이게 하는 연극과 동성혼도 인정하지 않으면서 올림픽 개폐회식에 레인보우 드레스를 등장시키는 것이 뭐가 다른가. 나는 연극이 운동으로 기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변화하지 않는 사람들을 어떻게 변화하게 할까를 고민한다.

코멘트



saitama





노인주간활동센터
라쿠라쿠


사이타마현 히가시마츠야마시에 있는 고령자 대상 복지시설. 지역에 사는 노인들이 평일 아침부터 오후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을 하며 일상을 보내는 곳. 연간 다양한 예술과의 접점을 만드는 ‘크로스플레이 히가시마츠야마 프로젝트(Cross Play Higashi-Matsuyama)’를
진행하고 있다.


리서치
︎히가시마츠야마시에 소재한 의료법인 호준카이는 오랜 기간에 걸쳐 지역에서 병원을 운영해온 가족 계승 법인으로, ‘Cure, Care and Culture’를 모토로 병이나 장애가 있어도 나이가 들어도 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문화를 중시하며 운영되고 있다. 현재 10대째 이사장이 이끌고 있으며 병원 외에도 노인주간활동센터 라쿠라쿠(デイサービス楽らく)도 운영한다. 라쿠라쿠의 센터장이 이사장의 부인에서 현재의 센터장인 딸로 바뀌면서, 공간과 운영프로그램을 대폭 변화를 가져왔다.

︎ ‘크로스플레이 히가시마츠야마’는 돌봄와 예술의 결합을 통해 가장 그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삶의 방식을 제공하는 것을 목적으로, 연간에 걸쳐 시설 내 아티스트레지던스 사업을 진행한다. 센터에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 7일~30일 간 원하는 시간에 머무르며 노인들의 활동을 참관하기도 하고, 참가하며 교류하기도 하고, 기획하기도 하는 시간을 갖고, 그 결과로 공연, 전시 등을 만든다.

︎방문했던 때에는 사이타마현 내의 다른 시인 후지미시의 공공극장 예술감독이기도 하며 안무가인 시라가 모모코 상이 레지던스의 결과 공연을 센터 내, 그리고 히가시마츠야마시의 공공극장에서 막 공연한 참이었고, 또 다른 레지던스 작가인 사진작가가 센터에 다니는 노인들의 옛날 사진으로부터 시작된 이야기들을 끌어내 사진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 공연 <어디선가 부는 바람인 당신, 여기에서 바람이 부는 대로(どこ吹く風のあなた、ここに吹く風のまにまに)>는 센터 공간을 대극장 무대로 그대로 옮겨오고 센터 내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는 광경을 무대 위에 설치된 객석에 앉은 관객이 참관하고 참가하는 형식이었다. 안무가는 센터에서 실제로 어르신 장기자랑을 열었고, 거동이 거의 불가능해 휠체어 위에서 거의 잠을 자는 아흔이 넘은 어르신과 콜라보 무용 공연을 ‘찾아내는’ 과정을 보여준다. 센터에서 실제로 그렇듯, 돌봄을 받는 어르신들과 돌보는 요양보호사들, 거기에 불쑥 나타난 예술가가 서로를 의지하고 지지하고 돌보며 지내는 모습을 그대로 무대화했다. 기능으로서 존재하는 요양보호사가 아니라 관계의 한축이 되는 사람으로서의 요양보호사가 특히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 이러한 본격적인 예술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배경에는 새롭게 센터를 이어받은 이사장의 딸이 공연예술축제 등에서 일했던 경험, 현재도 공연예술 프로듀서로 일하고 있는 사위의 영향과 추진력이 있었다. 사위가 경영하는 프로듀서 콜렉티브인 ‘벤치’는 이 센터의 연간 프로그램 기획뿐 아니라 ‘복지와 예술’을 키워드로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단지 공연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일상을 지탱해주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요양보호사가 이곳에 낯선 아티스트까지 돌보야 하니, 일상적이지 않은 업무가 늘어나는 셈이다. 아티스트의 존재가 모두를 협력하고 지탱하는 구조로 만든다는 것을 발견했다.”(관객과의 대화 중 안무가 시라가 모모코)

“돌보고 돌봄을 받은 것이 아니라 낯선 손님을 받아들이는 것이 용기라고 생각한다. 복지계에서 예술가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루틴이 수행되는 시공간에 예술가들이 휭 하고 나타났는데, 점점 서로 익숙해진다. 아티스트 역시 무소속감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할 수 없는 상황의 어색함에 익숙해진다”(관객과의 대화 중 제작프로듀서)

코멘트

(나의 일기)
“별 것 아닌 재능일지 모르지만, 그들이 그 한 순간 만이라도 다시 빛날 수 있도록 해주는 스포트라이트 조명, 소도구 등의 배려, 안무가와 합동공연을 펼친 휠체어에 앉은 할머니, 늘 절반 이상 졸고 있다는, 오늘도 오실지 말지 몰랐다는, 그 할머니가 안무가와 손끝을 맞대고 시라가 씨의 눈에서 한순간도 시선을 떼지 않는 그 집중력과 눈빛에 오열했다.”


카푸카푸


カプカプ. 1997년에 문을 연 요코하마시 아사히구 히카리가오카 소재의 장애인작업장.


리서치
︎ 새롭게 간척되어 고층빌딩과 고급 쇼핑몰이 가득한 새 요코하마도, 바다를 따라 펼쳐진 공원과 신축빌라와 호텔이 즐비한 낭만적인 요코하마도 아닌, 요코하마역에서도 한참을 버스를 타고 들어가는 근대식 아파트들이 널찍하게 자리잡은 거주단지 내에 있는 장애인작업장. 장애인작업장이라고 하면 하루종일 상자를 접거나 부품을 끼우거나 하는 식의 단순작업이 펼쳐지는 인테리어나 노동환경 따위에는 조금의 신경을 쓸 여유조차 없다는 식의 살풍경한 광경, 착취, 한달 일하고 20만원을 받는다는 식의 부정적인 이미지만을 떠올리는 것이 사실.

︎카푸카푸는 근대식 아파트 단지의 상가 안에 구획된 작은 공간들 여럿을 빌려쓰고 있다. 제일 길목이 좋은 초입에 있는 건 카푸카푸 카페. 장애인들이 만든 베이커리와 장애인들이 내려주는 커피를 장애인이 서빙하고 계산해준다. 적당한 단맛의 케이크가 명물이다. 바깥쪽에는 중고물품, 중고의류가 잔뜩 놓여있다. 매주 화요일에는 더 큰 바자회가 열린다고. 그 한쪽에는 장애인들이 만든 다양한 액세서리와 소품, 벽에는 발달장애인의 화풍이 느껴지는 그림들, 한자를 최소화한 안내문들.

조금 더 안쪽에 있는 작업실은 화실이다. 대여섯명 되는 장애인들이 저마다 책상에 놓인 종이 위에 열심히 무언가를 그리고 있다. 낯선 방문에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고 바로 작업재개. 이들이 그린 그림은 다양한 아트상품을 만드는 데 활용되기도 하고, 포스터에 활용되기도 하고 집집마다 돌리는 전단에도 활용된다.

방문한 계절이 겨울이니 볼 수 없었지만, 날이 좋을 때는, 상가 광장에 다 같이 나가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무용예술인이 와서 움직임 워크숍을 하기도 한다고. 열다섯명 정도 되는 장애인들이 매일 출퇴근을 하며 이런 일들을 한다. 이런 것들이, 이들의 ‘작업’, 이들의 ‘노동’, 그리고 ‘예술’.

︎ 현재 소장으로 있는 스즈키 상은 원래 예술을 전공하고 영화와 연극의 비평을 하시던 분이었다고. 우리나라처럼 장애인 관련 시설의 ‘장’이 되려면 사회복지사 자격증이 있어야 하느냐고 물으니, 자신은 장애에 대한 관심보다는 ‘예술’ ‘커뮤니티’에 더 관심이 있어 이 일을 시작하게 됐으며, 자격증은 없다고, 그거 없어도 된다고 단언한다. 그리고, 이것이 왜 엄연한 예술이라는 것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지, 왜 최저임금을 받아야 하는 노동이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장애예술을 얘기하려면 예술에 대한 관념 자체가 바뀌어야 한다고, 노동의 관념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고.   

︎돌아오는 길에 코바늘로 짠 커다란 블랭킷을 구매. 코바늘을 잡은 지 1년이 넘도록 에코백 만한 크기도 짜지 못한 나로서는 이 블랭킷을 짜낸 기술, 노동, 집중력, 그럼에도 3만원이라는 가격에 놀랄 따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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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stunomiya




영화  <무지갯빛 아침이
올 때까지>


虹色の朝が来るまで(Till the rainbow morning). 극영화, 63분, 2019년 개봉. 2018년 레인보우릴, 간사이퀴어영화제 초청, 일본-대만-홍콩-미국의 대학에서 상영.


리서치
︎전부터 궁금했던 영화의 공동체 상영이 있어 도치기현 우츠노미야 행. 일요일 아침 10시, 도치기현의 공공기관인 복지플라자에서 열리는 농퀴어영화 상영회. 어린 꼬마부터 노인까지, 수어와 구어가 자유롭게 오가는 객석. 상영 전 안내(사진 찍으면 안 돼요 등)는 이곳 복지플라자의 수어교실에 다니는 어린이들이 무대에 올라 수어와 구어로 동시에 아나운스. 진행자 역시 수어와 구어를 동시에 쓴다. 이곳에서 상영회를 하게 된 계기는 농인 당사자인 감독이 수어교실에서 특별수업을 했던 인연이라고.

︎지역에 사는 농인 레즈비언 커플. 몇 가지의 소수자성을 가진 두 여성이 사랑에 빠지지만, 정보 부족, 가족, 좁은 지역사회 등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고, 결국 다른 성소수자 동료들을 만나며 꿈을 꾸게 된다는 이야기. 동성애자의 얘기로서는 어쩌면 너무 현실적이어서 뻔하다고 느낄 수 있는 줄거리지만, 이 영화를 더 특별하게 만든 것은 농인 당사자 감독과 농인 및 성소수자 당사자 배우들의 출연이다. 청인의 감각으로 경험한 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던 삶.

︎네 명의 가족 모두가 농인인 감독이 어릴 적 청인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농인 동생과만 노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아버지가 새로운 장난감으로 카메라를 선물했고, 그 어린 딸은 자라서 영화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자신이 퀴어임을 말하지 못했던 경험과 새드엔딩이 보통인 레즈비언 영화가 아니라 희망적인 결말을 담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바람으로 만든 작품이라고. 그리고 농문화의 특성, 한다리 건너면 모두 아는 사이일 수밖에 없는 좁은 농문화 사회에서 퀴어로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꼭 담고 싶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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